부룬디 카루라마 마을 주민들의 정착과 자립을 위한 농작물 재배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부룬디
부룬디는 면적도 작고 인구도 7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나라입니다.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하였으나, 부족 간 내전으로 매우 불안한 정치적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1993년 당시 은다다예 대통령 암살 사건이 계기가 되어 2005년 휴전까지 13년 동안 종족 간 유혈 학살이 진행되었습니다. 30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 동안 많은 국민들은 인근 국가나 국경지역에서 난민생활을 해야 했고, 휴전이 되고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긴장상태는 계속되어 밤에는 마을 외곽에서 총성이 들리기도 합니다.

 

한국희망재단의 사업지 카루라마 마을
대다수 국민들에게 13년 만에 돌아온 고국은 격전의 흔적뿐이었습니다. 한국희망재단의 사업지가 있는 카루라마 마을은 주민 1888명이 살고 있는데 전체 200가구 중 절반이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과부와 고아입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식량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었습니다. 주민들은 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야생풀이나 동물을 잡아 끼니를 해결해야 했고,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농작물 재배 사업, 가든 백에서 텃밭으로
2015년, 한국희망재단은 카루라마 마을에서 현지 협력단체인 IPSDI BURUNDI와 함께 식량문제를 해결을 위하여 농작물 재배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마을주민들에게 농작물 재배 방법을 교육하고, 척박한 토지와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비닐 포대에 농작물을 재배하는 가든백(garden bag)을 활용하였습니다. 가구마다 가든백, 비료, 채소 종자 등을 지원하였고 주민들은 콩, 양파, 양배추, 토마토, 가지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2015년 하반기에 한국희망재단이 동시에 추진한 식수개발사업이 마무리 되면서 2시간을 걸어 식수와 농업용수를 길어 와야 했던 어려움이 해결되어 가든백 채소들을 집 앞 텃밭으로 옮겨 심어 농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농작물 재배를 통한 신선한 채소 확보는 식량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웃음과 희망을 잃었던 주민들에게 희망과 의욕의 씨앗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16년 염소사육 추진 예정
2016년에는 주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빈곤문제를 극복하고자 염소사육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염소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며 염소 배설물은 농업비료로 사용 할 수 있습니다. 염소사업은 카초코 희망 협동조합(KACHOCO HOPE COOPERATIVE)의 책임 하에 추진될 예정이며, 가축사육 교육부터 염소 구입, 울타리 건축, 축사 건축, 새끼 판매까지 전 과정을 주민들의 협동으로 운영하고 소득도 공동분배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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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 이 사람코너] 박두봉 한국희망재단 대구지부장


“영남일보 애독자인데, 지난 2월22일자 1면에 보도된 칠곡 ‘아동학대 부부’ 기사를 읽고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들 부부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을 텐데 어쩌다 저 지경까지 됐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저에게도 20대 초반의 아들이 있습니다. 아직 덜 성숙한 나이가 아닙니까.”



 

 



칠곡 아동학대 부부 ‘멘토’ 자처 / 영치금 넣어주고 재판비용도 부담
“부부 눈물로 반성”…석방 탄원서


한국희망재단 대구지부장 박두봉 <주>제오테크 대표(61)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젊은 재혼부부가 무직 상태에서 자녀 다섯을 키우다 아동학대와 유기죄로 구속기소돼 친권을 정지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지난달 초 이들 부부를 면회하러 무작정 칠곡경찰서로 갔다.


“10평(33㎡)남짓한 원룸에서 이들 부부와 3~7세된 아이 넷, 3개월된 영아, 그리고 무직인 누나 부부가 함께 오밀조밀 살았다고 하더군요. 딱하지 않습니까. 기초생활수급자로 긴급구호자금을 받아 사는데 남편은 당시 도배기능사자격을 따 취직을 하려는 상태에서 구속됐습니다. 아이가 보고 싶다며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더군요. 저에게 아이만 키울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간청해요. 둘 다 철없는 청소년기에 각각 동거를 해 아이를 낳아 살다 상대와 헤어진 상태에서 서로 만나 인연을 맺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칠곡으로 왔는데, 사랑하는 자식들의 얼굴조차 못 보게 되니 회한이 밀려올 수밖에요.”


박 대표는 이들 부부와 아무 연고도 없었지만 면회를 가 영치금과 사식을 넣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날밤 이들 부부의 모습이 눈에 밟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그는 담당 검사에게 ‘부부가 석방이 돼 사회로 나오면 오손도손 살 수 있도록 멘토가 돼주고 일자리도 알아보겠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썼다. 그리고 변호사를 찾아가 착수금을 내고 재판 비용을 댔다. 이들 부부의 살림살이도 자신의 공장 안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저 또한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공고를 졸업한 뒤 현장에서 기계·금속부품 제작을 했습니다.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러다 서른여섯 살에 대구 3산단에 밸브, 배관자재류 공장을 설립하고 미국, 캐나다 등지에 생산품을 전량 수출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지금은 자수성가한 중소기업인이지만 어렵게 살아와 가난하고 못 배운 이들의 마음을 안다. 그는 서른 살에 자립했을 때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 야학에서 청소년에게 글을 가르쳤다. 10여년 전부턴 가톨릭노동청년회 출신을 중심으로 한국희망재단을 설립해 5년 전부터 대구지부장을 맡고 있다. 한국희망재단은 초대 재단이사장이 함세웅 신부로 우리나라와 지구촌 곳곳에서 가난하고 못 배운 이들을 돕는 구호단체다.


박 대표는 2년전 아프리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주(州) 산간지역에 공공보건소를 설립하는 데 수천만원을 기부한 적이 있다. 또 인도 달리트공동체 공부방을 비롯해 방글라데시, 필리핀, 짐바브웨, 부룬디 등 저소득 국가 등지에 다양한 방법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 최근엔 몽골의 중증장애인 어머니들이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도 남모르게 여러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쑥스럽습니다. 다만 이들 부부의 가정이 이번 사건으로 정상적인 가정이 돼 아이들과 행복하게 산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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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타플레 구의 유일한 종합학교이자 이번 지진으로 교실이 붕괴된

네팔 마하락시미학교 재건축에 힘을 모아주세요

                                                        

 

 

                                                              ▲무너진 마하락시미 종합학교


2015년 4월 25일, 네팔에서는 규모 7.9의 강진이 발생하였습니다. 수많은 도시와 문화재가 무너지고 산골에 깃들어 있던 사람들은 소리없이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3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는 고르카지역 (Gorkha zone)은 이번 대지진에서 3번째로 큰 피해를 입은 곳입니다.


 

 


                                                                 ▲ 고르카 지역 지진피해 장면


 

 

 

                                                      ▲ 타플레 구(taple vdc) 마을 주민들의 모습 



차를 타고 카트만두에서 고르카(Gorkha zone) 도심까지 다섯 시간, 다시 비포장 산길을 삼십분 가량 달리면 타플레 마을이 나타납니다. 고르카 지역에 속해 있는 타플레 구(taple vdc)는 총 4,5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타플레 구에는 총 7개의 초등학교가 있고 이번 지진 피해로 총 6개가 파괴되었습니다.



                                                                        ▼ 사업지 위치

 

 

 



9개의 동으로 구성된 타플레 구에는 마하락시미 종합학교(Mahaluchimi school)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과정인 1-5학년, 중학교 과정인 6-8학년, 고등학교 과정인 9-10학년, 국제적으로는 고등학교 과정에 속하나 네팔에서는 단과대 정도의 개념으로 보는 11-12학년까지, 모두 65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터전입니다. 타플레에서는 유일하게 고등학교가 있는 학교입니다. 따라서 다른 동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마하락시미 학교에서 상급과정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학교마저도 이번 대지진으로 지붕이 주저 앉고, 건물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이 학교는 넓은 부지를 마련하지 못하고 땅을 조금씩 얻을때마다 건물을 하나씩 앉히면서 삐뚤빼뚤 들어서 있습니다. 그렇게 겨우 만든 건물 7채 중 6채가 이번 지진으로 부서졌습니다.


지진 이후 학교 운동장에 양철을 이용한 임시학교를 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어렵게 문을 연 임시교실이지만, 아이들이 공부하기에 시설이 너무 열악합니다.


 다가오는 우기를 대비해 비를 피할 요량으로 천정과 벽을 양철로 둘렀으나, 뙤약볕에서 양철지붕 아래 공부하는 아이들은 극심한 더위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교실바닥도 흙바닥이어서 위생적으로도 열악하고, 6~9월 우기에는 교실 바닥이 옦통 진흙이 될 수 밖에 없어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나무기둥으로 얼기설기 지어진 임시건물이기 때문에 이후에 추가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여진이나 재해로 교실이 무너질 수도 있어 아이들의 안전 또한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초, 중, 고등학교가 함께 있기 때문에 산을 개간해 겨우 농사를 짓고 있는 빈곤한 주민들이 돈을 모아 학교를 재건축하는 것은 불가 능한 일이기에 외부의 후원이 절실합니다.



 

 


 

마하락시미 종합학교는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의 아이들이 기초교육을 넘어 심화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꿈을 실현해나가는 유일한 발판입니다. 사상 초유의 대지진으로 너무도 큰 상처와 절망을 안게 된 아이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여건에서 공부하며, 하루 빨리 상처를 치유하고 꿈을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교 재건축사업이 꼭 필요합니다. 마하락시미 종합학교의 재건축 사업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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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가공훈련 교육에 참여한 여성들

 

식품가공훈련 교육에 참여한 여성들

 

 

눈물 마를 새 없었던 달리트여성들
인도 타밀나두 주 살렘지역은 빗물이 부족해 농사가 어렵습니다. 산림은 벌채로 인해 황폐해 있어 이 지역의 달리트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산에서 과일이나, 장작 등을 채집해야 겨우 극빈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여성들은 지역적 환경보다 신분적인 문제로 더 큰 고립을 겪고 있었습니다. 수천년을 내려 온 카스트제도가 여전히 뿌리 깊은 인도에서 카스트계급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을 불가촉천민 (달리트)라 부릅니다. 접촉만 해도 더러워진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고, 가난 속에 자라나는 이들, 특히 달리트 중에서도 여성은 사회적 차별을 넘어 성차별까지 감내해야 했습니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삶의 희망을 선물받은 여성들
캄캄한 절망만이 존재했던 이들 여성들의 일상에 ‘자립’이란 희망이 찾아온 건 국경 너머 한국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추진된 <식품가공훈련> 덕분이었습니다. 한국희망재단의 인도 현지협력단체인 SCDP(Society for Community Development Project)는 예르카드 부족민 협회 대표들과 함께 마을 여성들 중 가정환경이 열악한 여성 50명을 선발했습니다. 사업이 공고된 후 마을의 지원자가 많았기 때문에 합격된 여성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50명의 여성들은 피클 교육반과 과일잼 교육반으로 각 25명씩 나누어 3개월 간의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 인도 타밀나두 주 살렘지역의 모습

 

@ 과일잼 생산 기술을 교육하는 모습

 

 

 

 

@ 실습을 하고 있는 교육생들의 모습

 

 

 

피클 생산기술 (3개월 과정) 교육 진행
먼저 피클 생산 훈련이 3개월간 진행되었습니다. 총 25명의 여성들은 망고, 레몬, 토마토, 생강, 마늘, 아바까(Avakka), 풋고추, 암라(Amla), 여주(Bitter Gourd)를 이용하여 피클 만드는 방법을 교육받게 되었습니다.

 

과일잼 생산기술 (3개월 과정) 교육진행

피클생산과정과 마찬가지로 과일잼 생산기술 교육도 3개월 간 25명의 여성들에게 진행되었습니다. 교육생들은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모든 수업은 이론과 실습교육을 병행했으며, 3개월이 지난 후 교육생들은 토마토, 파파야, 바나나, 호박 잼 제조법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과일을 섞어 잼 만드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견학교육 및 소득창출 교육, 소액대출 주선
교육에 참여한 50명의 여성들은 피클과 과일잼을 생산하는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견학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코임바토르에 위치한 타밀나두 농업대학에서 교육생들의 견학이 진행되었는데, 이 덕분에 더 많은 정보와 지식들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이후 빈곤여성들이 피클과 잼을 가공해 판매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회계처리 및 시장분석, 판매기법 등 소득창출을 위한 교육도 아울러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이 본격적으로 피클과 과일잼을 만들어 소득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제작물품을 구입할 초기자본이 필요한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SCDP는 모든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수료한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지역은행으로부터 사업초기 필요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습니다.

 

@ 여성들이 생산해 포장한 피클의 모습

 

 

 

 

 

 

스스로 빈곤을 딛고 일어서는 달리트 여성들

'달리트'라는 신분 때문에 늘 멸시와 가난을 짊어지고 살았던 여성들, 이들 여성들에게 햇살같은 희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3개월 간 피클과 과일잼 생산 기술을 교육받은 여성들은  본격적인 생산 판매에 돌입했습니다.

모두의 간절한 바람대로 사업은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50명의 여성은 무리 없이 생산품을 제작했고, 지역을 방문하는 광관객을 대상으로 피클과 과일잼을 판매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전 일거리가 없어 산에서 나무뿌리나 땔감을 채집해 판매했을 적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안정적으로 창출할 수 있게 되었고, 생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사업의 가장 큰 성과는 카스트제도로 인한 사회적 편견에 늘 억압받고 살았던 달리트여성들이 삶의 자존감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힘은 국경 너머 한국이라는 나라의 후원자들이 전해 준 소중한 희망입니다.

경제적 자립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어 가는 인도 달리트여성들에게 앞으로도 큰 응원 부탁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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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51, 40명의 인도 빈곤여아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기 위해 시작했던 인도여성 간호보조인력 교육 사업.’

 

드디어 현지단체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와 희망재단 여러분에게 전해드리려 합니다. 아래는 희망재단의 현지협력단체인 WFW에서 보내온 메일입니다.








지원받은 여학생 40명 모두가 1학년 과정을 통과했다고 하네요!

축하해주세요!! 짝짝짝!!

 

학생들의 성적표 사본도 함께 보내왔습니다.



 






정규교육과정 10~12학년을 수료하던 도중 빈곤선 이하의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던 40명의 여학생들. 어쩔 수 없이 공부를 그만두게 되었던 만큼 사업 시작당시 여학생들이 학업에 대해 갖고 있던 열의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초심을 잃지 않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꾸준히 공부한 학생들이 정말 대견하네요. 다시 한번 박수

 

간호보조인력 교육사업은 몬순기후로 인해 농사철이 짧은 인도 타밀나두 주에서 효과적이고 장기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전문기술 교육이라는 인식하에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이혼과 별거의 증가, 결혼 지참금 때문에 일어나는 각종 사고, 젊은 기혼여성들의 자살, 가족의 붕괴 등 여러 형태로 사회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번 사업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혼자 살아가던 여성들의 자녀에게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저렴하고 평등한 교육의 기회

 

소니아(Soniya)도 그 중 한명입니다. 소니아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언니, 여동생과 함께 살아가던 중 간호보조인력 교육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소니야가 11학년이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농사일 돕는 것 말고는 특별한 재주가 없었던 어머니는 힘겹게 소니야가 12학년을 마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홀로 소니야를 전문 교육까지 받도록 하는건 역부족이었습니다. 별다른 대책이 없어 안타까워하던 두 모녀는 WFW의 지원을 받게되었고, 소니아는 1년 동안 꾸준히 좋은 성적을 얻었습니다.






 



아직도 저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어요. 전 제가 전문기술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거든요. 저희 어머니는 도저히 그럴 형편이 안됐어요. 우리 가족이 먹고 살기에도 형편이 넉넉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탓할 수는 없는 문제였죠. 어머니는 더 늦기 전에 언니 시집도 보내야하고, 동생 공부도 시켜야 하잖아요. 무엇보다도 일단 가족이 먹고 살아야죠. 옷도 사 입어야 하구요. 이 외에도 기본적으로 생활비가 들어가는 곳이 많아요. 상황이 이런데 제가 더 공부할 수는 없었죠. WFW직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가 전문기술 과정에서 공부할 수는 없었을 거에요. 다른 사설교육기관에서 이 과정을 수강하려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교육비가 들었을테고, 거기서 공부하는건 꿈도 꿀 수 없어요. WFW 덕분에, 2년 과정을 끝낸 후에는 제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인근의 사립병원에서 제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주었죠. 그 사립병원 직원분들도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저를 존중해주셔서 거기 있는 동안 제 자존감이 많이 회복되었던 것 같아요. 이 교육과정을 마치고 자격증을 따게되면 높은 보수를 받는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나눔은 또 다른 나눔으로

 

여학생들은 학습에 필요한 책과 노트, 필수적인 간호장비, 시험응시료 등을 지원받고 있으며, 취업과 관련해 현지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받은 것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각자의 마을에서 보건활동에 참여한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학생들이 장차 훌륭한 의료인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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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희망재단 희망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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